친일파 청산3 친일파 청산 실패 이유 : 미군정, 반민특위와 이승만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우리나라는 해방되었고, 이제 친일파들을 단죄할 시간이 왔다고 믿었다. 하지만 미군정을 거치면서 첫 번째 골든타임을 놓쳤으며, 곧이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반민특위가 출범되었지만 이마저도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두 번째 골든타임 마저 놓치고 만다. 1. 첫 번째 골든타임 : 미군정 (1945.9.9. ~ 1948.8.15.) 구한말, 조선은 오랜 시간 일본의 군사적 제국주의를 앞세운 침략에 병들어 있었다. 청일전쟁으로 가는 과정에서 청군을 축출하기 위한 경복궁 전투(1894년 7월 27일; 경복궁 점령)로부터 보면 약 50년. 짧게는 조선의 외교권이 박탈된 날인 을사조약(1905년 11월 17일)으로부터 보자면 약 40년이다. 기나긴 고통 끝에 마침내 우리나라는 1945년.. 2023. 1. 6. 자주적 독립 좌절과 친일파 청산 실패 : 미군정과 맥아더 포고령 혹시 우리나라가 35년간의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광복 이후에 단 한 명의 친일파도 공식적으로 처벌하지 못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 기나긴 시간 동안 일본의 식민지배 아래 고통받았던 우리 민족은, 어쩌면 일본보다도 더 나쁜 친일파 조선인에 대한 처벌을 하지 못한 것인가? 이는 우리가 자주적 독립을 하지 못한 데서 기인했으며, 그 시작은 바로 맥아더 포고령이었다. 결국 미군정(1945.9.9. ~ 1948.8.15.)의 보호 아래 친일파들은 이제 친미로 노선을 바꿔 다시 권력을 잡게 된다. 1. 미군정의 시작, 맥아더 포고령과 그 의미 (1) 점령군으로서 미군 우리가 광복 이후, 친일파 청산에 실패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 시작은 바로 일본으로부터 우리가 자주적 독립을 하지 못함.. 2022. 11. 20. 광복 이후 1945년의 국내 한반도 정세(여운형과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조선인민공화국) 1945년 8월 15일 우리 한반도는 드디어 35년간의 일제강점기로부터 벗어나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광복 직후인 1945년의 우리 국내 한반도 정세를 그 중심에 있었던 몽양 여운형 선생(1886~1947)과 그가 조직한 단체인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조선인민공화국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포스팅에서 우리는 해방 직전까지 국내와 해외에 어떤 독립운동가와 독립운동단체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 활동을 살펴보았었다. 국외에는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단체로 김구를 중심으로 하는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김두봉을 중심으로 한 옌안의 화북조선독립동맹이 있었다. 광복 이후에는 아무래도 해외에 있었던 독립운동 단체보다는 국내에서 활동하였던 독립운동가인 몽양 여운형 선생을 중심으로 한반도의 정세가 급격.. 2022. 11. 19. 이전 1 다음